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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근간을 이루는 인도네시아 원주민 프리부미 본문
인도네시아 원주민은 프리부미라 불리는데 이는 산스크리트어 Pri(이전)와 Bhumi(지구)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네덜란드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전에는 말레이어로 토양의 아들을 뜻하는 부미푸트라를 사용하였고, 독립한 이후로는 프리부미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주민을 뜻하는 이 용어는 독립 이후에 원주민과 외국계 시민 특히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을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프리라는 용어는 멜라네시아 혈통의 인도네시아인을 언급하는 데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그들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아랍계 인도네시아인들은 때때로 자신들을 프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프리, 부미푸트라라는 용어는 인도네시아에서 프리부미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더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1998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인종 차별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프리 또는 비 프리의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습니다. 17세기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인도네시아를 지배할 당시에는 사회계층을 부족으로 구분하기보다는 종교로 구분하였습니다. 1815년에 권력을 잡은 식민지 정권은 다시 부족 단위로 구분해서 관리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럽인 계통과 인도네시아 계통의 사람들로 구분해서 관리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주민은 사실상 내국인으로 관리하고,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아랍계 인도네시아인 및 비 인도네시아인은 동양계 외국인으로 별도 관리되었습니다. 부족의 승계 시스템은 공식적으로 소속된 부족사회보다는 아버지의 혈통을 따랐습니다. 즉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자녀는 아버지의 혈통을 상속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유럽인 남성과 인도네시아인 여성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자녀는 법적으로 유럽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어 사전은 프리부미를 원주민 또는 원주민 거주자로 번역합니다.
인도네시아인의 대부분은 유전적으로 다른 동남아시아인과 비슷합니다. 2020년에 실시된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동남아시아인은 동아시아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대부분 동아시아계 혈통을 이어받았습니다. 현지 원주민과 비슷한 요소가 55%이고, 동아시아와 유사한 요소가 45%였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문화는 원주민의 관습과 외국 여러 문화와의 교류를 통한 오랜 상호작용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극동, 남아시아 및 중동 사이의 고대 무역로를 따라 중앙에 위치해 있어 불교, 기독교, 유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결과 원래 원주민 문화와는 매우 다른 복잡한 문화적 혼합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슬람과 힌두교 융합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발리춤에서 발견됩니다. 발리춤은 고대 불교 및 힌두교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왕국을 거치면서, 이슬람 예술의 형태와 구조에 결합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서방 세계의 TV 쇼, 영화, 음악과 같은 현대적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뿐만 아니라 정치, 과학, 기술시스템도 인도네시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도는 인도네시아의 노래와 영화에 특히 영향을 많이 미쳤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노래의 형태는 주로 아랍 및 말레이 전통음악과 혼합된 인도식 리듬 당두입니다. 여러 외국 문화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일부 외딴 인도네시아 지역은 여전히 고유한 원주민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멘타와이, 마스맛, 다니, 다약, 토로야와 같은 원주민 부족은 여전히 고유한 부족 의식과 관습을 유지하고 있고, 전통 의상을 입고 있습니다.
2006년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약 2억 3천만 명으로 추정하였는데, 프리부미는 그중 약 95%를 차지하였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문화와 부족들 사이에서 프리부미 문화는 국가의 사회, 경제적 환경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식민지 시대에는 주민을 원주민과 비원주민으로 구분해서 관리하였고, 독립 이후에도 이런 구분은 지속되었습니다. 프리부미 문화와 비 프리부미 문화로 구분하여 관리되었고, 이는 경제개발 정책에도 중용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공인된 소수부족만 해도 1,340개가 훨씬 넘습니다. 이들 중 200개는 오스트로네시아 원주민들의 후손들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족은 전체 인구의 41%를 차지하고 있는 자바인입니다. 자바섬에 자바인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었으나 수많은 이유로 다른 섬으로 이주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순다족은 서부 자바섬에 살고 있는 자바인 다음으로 큰 부족입니다. 또한 칼리만탄과 파푸아에도 많은 부족들이 살고 있고, 그들은 오스트로네시아 계열에 속하지만 그들과 전혀 상관없는 파푸아어를 사용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소수부족을 엄격한 기준에 따라 분류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잦은 이주, 혼합된 문화 및 언어의 영향으로 인해 명확하게 분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반 테니 즈와시 레보 네즈를 자바인의 일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 고유의 방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부족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순다 사람들과 많은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는 바두이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주민이 식민지 시대 자카르타에서 아랍, 중국 및 인도 이주민들과의 결혼에서 생겨난 베타 위 부족 또한 같은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은 전체 인구의 약 1% 미만을 차지하고, 그중 일부는 호키엔, 하카와 같은 다양한 중국 방언을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