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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라 불리는 작은 체구의 중앙 아프리카 원주민 피그미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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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라 불리는 작은 체구의 중앙 아프리카 원주민 피그미족

순수보라 2021. 4. 15. 08:40

피그미족은 중앙 아프리카의 열대우림에 사는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는 부족으로 현지에서는 바야카라고 불립니다. 네그릴로라도 불리는 피그미족은 독특한 신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균 신장이 150cm 미만이며, 다른 흑인들과는 다르게 피부의 색깔도 진하지 않았습니다. 몸은 근육질로 다져지고, 몸통은 길고 굵으며, 팔은 길지만 다리는 짧습니다. 머리는 큰 편이며, 머리카락은 가늘고 곱슬입니다. 피그미족은 다른 부족과 달리 10대 초반부터 키의 성장이 둔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성인들의 신장이 작았지만,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고립된 생활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프랑스 인류학자 카토르화쥬는 체구가 작다는 이유로 필리핀의 아구타족과 바탁족, 말레이 반도의 세망족을 네그리토라 부르며, 네그릴로와 함께 인도 남부 출신 부족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남아 네그리토는 피부색이 더 진하고 체모가 얇다는 형질적인 차이로 인해 1960년대 후반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인종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주로 콩고 분지의 숲이나 큰 호수지역을 낀 지형에 살고 있습니다. 신장이 다른 부족들보다 월등히 작기 때문에 난쟁이라고 불리지만 그들은 바야카라는 호칭을 더 선호합니다. 또한 피그미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모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바야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피그미족은 다양한 부족 공동체로 나누어져 있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체구의 신체적 특징과 문화적 공통성으로 인해 하나의 부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기록은 외부인의 기록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원주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에서 발견됩니다. 난쟁이를 뜻하는 피그미라는 단어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최초로 언급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원시생활을 묘사하면서 피그미라는 단어를 인용하였습니다. 17세기 이후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난쟁이족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해부학자 타이슨은 침팬지와 유사한 부족이라 하였고, 자연주의자 에드워즈는 오랑우탄과 유사한 부족이라 하였습니다. 원주민은 실제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적 특징을 반영하는 피그미 어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농업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콩고분지 동부지역에 살고 있는 무부티 부족은 반투계의 언어를 사용하고, 에베소 부족은 나일 사하라 어족과 비슷한 농업인들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콩고분지 서쪽에 사는 아카 부족과 바보 부족은 주변 부족과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카족과 바보족의 조상은 현재의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남부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추정됩니다. 이 두 부족은 인근의 다른 농경 부족들과 밀접한 거래를 유지했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 부족들에게 옥수수 등 신대륙의 물건들이 전해지면서 바보족은 남서방향으로 이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주한 지역의 농경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고유 언어를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인근 농경민 부족들과 바보족의 언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역 농경민과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언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유언어의 문법과 어휘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현재는 농경민의 언어와 비슷한 형태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은 음악을 사랑하는 부족입니다. 집단적인 흥을 돋우는 음악은 복잡한 화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시마 아롬은 피그미 음악의 복잡한 화음이 중세 유럽 아르스 노바의 폴리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음악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악기는 간단하고 실용적인 것으로 전통적인 유목민의 생활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원주민은 콩고 민주공화국의 이투리 숲에 사는 무부티족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콜린 턴불의 저서 숲의 백성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부계중심의 혈통을 중시하여 결혼 후에는 남편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가족구조에 변화가 생겨 핵가족의 형태가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무부티족의 가장 일반적인 결혼 관습은 자매 교환입니다. 남자가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 배우자의 자매나 다른 여성도 함께 데리고 와서 살게 됩니다. 원주민 사회에서 결혼비용은 일반적인 부분이 아니라 신부의 가족에게 직접 잡은 영양을 보내면 그만이었습니다. 야마우치 아키라에 따르면 문화적인 배경으로 어머니와 아들의 결혼이 용인되었다고 합니다. 원주민은 체계적인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마을 단위가 평등한 구조를 유지하는 최고의 사회조직이었습니다. 남녀는 기본적으로 평등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중요한 사항을 결정할 때는 불 주위에 모여서 남녀가 평등하게 토론에 참여하였습니다. 원주민의 생활은 숲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에게 숲은 위대한 수호자이고, 공급자이며 성지입니다. 그래서 숲을 아버지와 어머니라 부릅니다. 원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 중의 하나는 모리모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주로 부족에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 거행되는 의식으로 남성들만이 참여하게 됩니다. 각 가정에서는 모리모 의식에 바치는 음식을 준비하고, 남성들은 밤이면 불길 주위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때 여성과 아이들은 문을 닫고 집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의식은 영국의 고고학자 콜린 턴불에 의해 알려졌습니다. 모리모는 의식 기간 동안 남성이 부는 트럼펫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트럼펫은 나무나 대나무로 만들어지는데, 재료보다는 소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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