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센스 1000달러 파이프라인

동남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참족 본문

카테고리 없음

동남아시아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참족

순수보라 2021. 4. 9. 14:19

참족의 기원에 대해 많은 설이 있지만 보르네오를 통해 동남아시아 반도에 정착했다는 것이 가장 일반적입니다. 약 5천 년 전 동남아시아에는 몬족과 크메르족 같은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의 원주민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참족은 바다를 통해 동남아시아를 정복하러 온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의 선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2세기부터 동남아시아 대륙과 해상 무역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번영하였습니다. 또한 수세기에 걸쳐 인도와 교류를 지속하면서 인도의 선진적인 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였습니다. 8세기부터는 구자라트와 같은 지역의 무슬림들이 인도와의 무역과 해운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이슬람 사상은 힌두교, 불교와 더불어 이 지역의 3대 종교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11세기 이후 참사원의 건축양식을 보면 앙코르 와트 사원과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참족은 1177년에 크메르 제국을 공격하여 크메르 수도를 약탈하기도 하였으나, 1181년에는 크게 패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말레이 반도로 도망쳤고, 15세기 초반에는 말라카에 그들만의 나라를 건국하였습니다. 이들은 1414년부터 무슬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수니파 이슬람을 받아들였습니다. 1594년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점령함에 따라 참파는 조 호르와 함께 맞서 싸우기 위해 군대를 보냈습니다. 1607년~1676년 사이에 참파왕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이런 사회적인 변화를 반영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참파 왕국의 무슬림 공주가 절실한 이슬람교 신봉자였습니다. 그녀는 마자파힛 제국의 일곱 번째 왕에게 큰 영향을 미쳐서 왕실 전체가 이슬람으로 개종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결국 제국 전체의 주민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역사에 중요한 기여를 한 참파의 또 다른 인물은 라덴 라흐 마트입니다. 그는 자바섬에 이슬람을 전파한 아홉 명의 성도 중 한 명으로 수난 암펠이라고 불리며 라마트 왕자이기도 합니다. 800년 경 크메르 제국이 전성기를 누리고 베트남 사람들이 자오즈 남쪽으로 계속 영토를 확장하면서 다이비엣에서의 참파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약 10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30만 명의 베트남 군대와 싸워서 대참패를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멀리 쫓겨나게 되고 베트남에 더 이상의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습니다.

1471년에 베트남이 참파 왕국을 침공한 이후 참족과의 도자기 무역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내전,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침입, 포르투갈의 말라카 정복 등으로 도자기 무역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1720년 베트남은 영토를 확장하면서 참파 왕국을 정복하고, 19세기에 베트남 황제 민망이 왕국을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참파 왕국의 무슬림 왕 포치 엔은 그의 백성들을 모아 캄보디아로 도망쳤고, 해안가에 살던 사람들은 말레이시아로 도망쳤습니다. 소수의 원주민이 중국의 하이난 섬으로 도망쳐서 정착하였습니다. 중국의 명나라가 망하면서 수천 명의 중국 난민이 남쪽으로 도망쳐 참파 왕국과 캄보디아에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젊은 남성들로 대부분 현지에서 참족 여성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동남아시아 문화보다 중국 문화를 더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에 캄보디아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침입을 막아내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그 이후 참족들은 캄보디아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침공을 피해 탈출한 참족 무슬림들에게 아늑한 피난처를 제공하였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도 그들을 받아들여 후한 대접을 해주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제 말레이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었습니다. 1960년대에는 베트남 내에 참족의 국가부흥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부족 자체의 동맹과 다른 부족과의 동맹을 통한 국가부흥 운동은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1970년대 후반 이후로는 베트남과 캄보디아에서 참족 분리주의 운동이나 정치활동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베트남 정부는 참족을 54개 민족 중 하나로 공식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 정부는 그들에 대한 종교적 박해와 민족적 탄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종교적 자유를 제한하였습니다. 그들이 다니는 힌두교 사원은 그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관광지로 활용되었습니다. 2010년과 2013년에는 정부에 의해 참족이 살해되는 일이 여러 건 발생하기도 하였습니다.

참족의 문화는 평범한 해양문화와 산악문화가 어우러진 토착적인 문화 요소와 인도의 문화, 한족의 문화 및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인한 외국적 문화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문화와 외래문화가 혼합된 것은 지리적, 사회적, 역사적 조건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입니다.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빈번하게 교류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주변 지역과 많이 유사한 문화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참파 사원의 건축양식, 스타일 및 비문을 분석해 보면 역사, 예술 및 건축물의 유사성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스트로네시아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며, 이는 다른 언어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외래어와 용어들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참족들은 베트남어, 크메르어, 말레이어 등 자신들이 살고 있는 국가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동시에 참족의 언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부 원주민들은 아랍어를 사용할 줄 압니다. 참파 왕조에 들어온 최초의 종교는 인도로부터 들어온 힌두교의 한 형태였습니다. 힌두교는 16세기까지 부족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였습니다. 시바신을 모시는 수많은 사원들이 베트남의 중심부에 지어졌습니다. 이 사원들은 인도네시아 자바의 보로부두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미얀마의 바간, 태국의 아유타야와 같은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사원 건축물과 비견할만큼 뛰어난 기술을 자랑합니다. 특히 마이손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원주민들은 현지화된 힌두교를 믿는 집단과 이슬람을 믿는 집단으로 나누어졌습니다. 17세기에 이르러 왕족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원주민들도 이슬람으로 개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