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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3국의 산과 바다를 근거로 순록을 기르던 원주민 사미족 본문
사미족은 다른 우랄족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볼가 지역을 근거지로 하며, 우랄어 계열의 사미어를 사용합니다. 전통적으로 바다낚시, 모피 사냥, 순록 목축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원전 2천 년부터 러시아 북부의 강을 따라 북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원전 1600년과 1500년 사이에 핀란드 레이크랜드에 정착한 사람들이 지금의 사미족이 되었습니다. 역사 기록을 보면 98년 경에 역사학자 타키투스가 원주민을 페니라고 언급한 내용이 나옵니다. 핀 또는 페니라는 이름은 고대부터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스칸디나비아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현재 핀란드에 거주하는 사람을 핀이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대신 기존의 원주민들은 랩스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노르웨이 일부에서는 아직도 원주민을 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18세기 이후 북부 노르웨이로 이민 온 핀란드 이민자들은 원주민과 구별하기 위해 크벤이라고 불리었습니다. 현재 원주민의 약 10% 이상이 순록 목축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에서는 약 2,800명의 원주민이 순록 목축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의 순록 목축은 전통문화의 보존, 환경보호, 문화 및 정치적인 이유로 사미족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주로 산과 바다 주위에 모여 살았습니다. 바다에서는 낚시를 하고, 산에서는 순록 목축을 하며 생활하였습니다. 특히 노르웨이 북부 해안은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어서 어부와 정부의 중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흑사병으로 원주민의 인구가 많이 줄어들면서 정부는 그들에게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농장을 제공하였습니다. 이는 물고기잡이에서 줄어든 세금을 보충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바다에 사는 원주민들은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와 내륙 수로를 따라 정착하면서 농업 및 소 사육에 종사하였습니다. 산에 사는 원주민들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생활방식에 따라 순록 목축을 하였습니다. 매년 순록을 따라 노르웨이, 스웨덴, 러시아를 오가면서 이동하였습니다. 이는 수년 동안 세 나라에 세금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1635년에 스웨덴 정부는 그들을 나사 피엘의 광산에서 일하도록 강요하였습니다. 많은 원주민들이 강제 노동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의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습니다. 수년간의 원주민 동화정책으로 오늘날 전체 인구의 약 10%만이 순록 목축을 하고 있습니다. 사미어를 사용하던 원주민들은 스칸디나비아 문화를 접하면서부터 스칸디나비아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은 수세기 동안 외부와의 접촉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원주민들은 스칸디나비아 북쪽 지역에 살고 있었고,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남쪽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18세기 이후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북유럽에 대한 식민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북쪽으로 쳐들어 갔습니다. 두 나라는 북유럽의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사미족을 대상으로 강제동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 나라들은 원주민을 문명화가 필요한 원시인들로 여겼습니다. 1349년 노르웨이 북부에 전염병이 퍼지기 전까지는 원주민과 노르웨이인 사이의 교류가 별로 없었습니다. 원주민은 순록 목축을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한 반면 노르웨이인은 농사를 지으면서 외부와의 무역을 통한 경제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349년 12월 노르웨이 북부에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유럽 무역로를 통해 외부와 빈번하게 접촉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에 쉽게 노출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노르웨이는 북부 농장의 60% 이상을 관리할 수 없었습니다. 원주민은 오랫동안 남부와 독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원주민에 대한 기독교 동화정책이 강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889년에는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7년 의무교육을 실시하면서 노르웨이 문화와 언어의 강제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학교에서 사미어의 사용이 금지되었고, 북부의 강력한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원주민의 문화적, 경제적인 지위는 더 약화되었습니다. 스웨덴은 토지 제공, 세금 혜택 및 군복무 면제와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국민들을 북부로 이주하도록 권장하였습니다. 특히 1900년부터는 원주민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농업용 토지를 구매하거나 임대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노르웨이어로 문서를 작성하고 노르웨이어 이름으로 등록을 해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1920년대에 많은 원주민들이 북부 지역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913년 노르웨이 의회가 자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토지를 할당하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원주민과의 갈등은 더 심해졌습니다. 1944년 이후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핀란드 북부와 노르웨이 북부에서 원주민의 문화를 철저히 파괴하였습니다. 1979년이 되어서야 원주민의 정치적인 권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1986년 8월에 사미족의 국가와 국기가 만들어졌고, 1989년에는 노르웨이 의회의 원주민 대표가 처음으로 선출되었습니다. 2005년에 원주민 관련법이 통과되면서 국유재산으로 관리되던 토지를 원주민들이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르웨이는 사미족에 대한 노르웨이 동화정책과 차별정책 때문에 국제적인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2011년 4월 8일에 유엔 인종 차별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원주민들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800년 이후 비슷한 정책을 실시해왔던 스웨덴도 같은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2020년 스웨덴은 과거에 있었던 원주민 학대사건을 조사하고 문서화하기 위해 진상조사위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같은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핀란드는 원주민에 대한 자금 지원을 거부하였습니다. 핀란드 정부는 원주민의 권리를 제한적으로 인정하였지만 그들의 토지소유권과 그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핀란드 정부는 수세기 동안 원주민의 토지를 사용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