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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확장으로 원주민 보호구역에 갇힌 미국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 본문
아메리카 원주민은 미국 원주민과 많이 다릅니다. 미국 원주민은 미국의 영토와 하와이에 사는 사람들로 제한됩니다. 원래의 원주민은 미국 대륙 출신의 원주민과 알래스카 원주민을 말합니다. 미국에는 연방 정부가 인정하는 574개의 부족이 있으며, 그중 절반은 인디언 보호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알래스카 원주민이 아닌 원주민은 하와이 원주민, 사모아 또는 차모로족입니다. 미국 인구조사에서는 이들을 하와이 원주민 및 기타 태평양 섬 주민으로 분류합니다. 이후부터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원주민으로 인용하겠습니다. 현재 원주민의 조상은 약 1만 5천 년 전에 아시아에서 유입되었습니다. 이후 다양한 민족이 생겨나고, 사회 및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1492년부터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질병에 대한 면역력의 부족, 빈번한 전쟁, 무차별적인 인종청소, 노예화로 인해 원주민의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현재 미국에는 5백만 명이 넘는 원주민이 살고 있으며, 그중 약 78%는 보호구역 외부에 살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와 오클라호마는 미국에서 원주민의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들입니다. 대부분의 원주민은 작은 마을이나 시골 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미국이 건국 되었을 때 살고 있던 원주민은 백인 정착민과 분리된 지역에서 살았습니다. 연방 정부는 1871년 독립된 국가로서의 원주민 지역사회를 인정하지 않고, 연방법에 따라 국내 의존 국가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법 제정을 통해 많은 부족의 주권을 포함하여 조약에 합의된 권리와 특권을 보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원주민 보호구역은 여전히 주법과 무관하게 보호받으며, 원주민의 행동은 부족 법원과 연방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1924년 이후부터는 미국 시민권이 없는 원주민으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미국 시민권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원주민은 주 선거 및 연방 선거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수정 헌법 제14조에 따라 원주민에 대한 보호가 확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주 정부에서는 수십 년 동안 원주민의 투표권을 계속 거부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원주민 문화는 초기 이민자와 기독교 이민자들의 문화와 상당히 달랐습니다. 원주민의 대다수는 사냥터와 토지를 부족 전체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인은 개인 고유의 재산권을 인정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재산 소유권에 대한 원주민과 유럽 이민자 간의 인식 차이로 인해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전쟁을 위한 여러 부족들 간의 동맹은 당시 미국 사회에 광범위한 정치적 긴장, 인종 폭력 및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유럽인이 미국에 들어오면서 같이 들어온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아직 면역력을 가지지 못한 다수의 원주민이 죽었습니다. 전염병은 유럽인들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았지만 직접 접촉을 통해 원주민에게 전염되었으며, 일부는 돼지를 통해 전파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천연두로 인한 피해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열대 저지대에 사는 원주민의 인구는 전염병으로 1세기 만에 90% 이상 감소했습니다. 캘리포니아 인디언의 인구는 19세기에 90% 이상 감소했습니다. 19세기 초에는 20만 명 이상이었지만 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해 세기 말에는 약 15,000명으로 줄었습니다. 1833년에는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이 캘리포니아 인디언 부족를 휩쓸었습니다. 1806년에 1건, 1828년에 2건의 홍역 전염병으로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사망률이 너무 높아서 원주민들은 지속적으로 기독교로 개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영 제국의 통치에 있던 13개의 식민지가 반란을 일으키던 시기에 미국을 건국한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헨리 녹스 전쟁 장관은 원주민을 미국 시민으로 동화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했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으로 19세기경 미국 민족주의 운동의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다. 미국 혁명 이후 다수의 유럽계 미국인이 서부로 이동함에 따라 원주민 영토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고 집단 간의 전쟁 및 긴장이 고조되었습니다. 1830년에 미국 의회는 인디언 강제 이주 법을 통과시켰고, 정부는 원주민을 그들의 고향에서 쫓아내 미시시피 강 서쪽 땅으로 이주시키고, 이주해 오는 유럽계 미국인들을 수용하였습니다. 잔인하고 강제적인 이주로 인해 원주민의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서부의 원주민들은 일반적으로 인디언 전쟁이라고 불리는 투쟁을 통해 19세기 내내 미국과의 무력 충돌을 계속했습니다. 다코타 전쟁, 위대한 전쟁, 뱀 전쟁, 콜로라도 전쟁 등을 거치면서 백인 문명의 압력으로 원주민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1851년에는 계속 줄어드는 원주민들의 보호구역을 보호하기 위해서 별도의 자금을 할당하여 현대 원주민 보호구역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원주민은 연방정부와 정치적, 법률적으로 독특한 관계를 가지고 유지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후반 이후 이들은 문화활동을 통해 정치에 활발하게 참여하였습니다. 또한 젊은 세대를 위해 토착어를 가르치고 보존하고 더 큰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확대했습니다. 원주민은 최근 독립신문과 온라인 미디어를 설립했습니다. 원주민이 자신을 지칭하는 방식은 지역과 세대에 따라 다릅니다. 나이가 많은 원주민은 스스로를 인디언 또는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부르지만, 젊은 원주민은 토착민과 원주민으로 구별해서 부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