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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기반을 세운 이스라엘 원주민 베두인족

순수보라 2021. 4. 7. 23:02

옛날부터 베두인족은 목축, 농업, 수렵과 채집활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남부의 사막에서 가축을 기르며 사는 반유목민 아랍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사막을 가로질러 물품과 사람을 수송하여 수입을 얻었습니다. 물이 부족하고 정착해서 살 수 있는 토지가 부족해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베두인족은 그 기원에 따라 고대 아라비아 유목민의 후손, 일부 시나이 베두인 부족의 후손, 경작지에서 온 팔레스타인 농민의 세 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알-타라빈 부족은 네게브와 시나이 반도에서 가장 큰 부족이며, 알-타야하와 알-아자즈마 부족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시나이 반도에서 최초로 유목민들이 생활한 것은 약 7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나이 반도의 베두인족은 네게브를 오가며 이주하는 생활을 계속 하였습니다. 이후 베두인족은 한 곳에 머물러 살기 위해 정착촌을 세웠습니다. 부족사회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며, 개인의 행동과 대인 관계에 관여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18세기부터 아라비아 사막, 트랜스 요르단, 이집트, 시나이에서 네게브로 이주했습니다. 베두인족의 전통적 생활양식은 프랑스의 침략 이후 완전히 변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사막을 벗어나 새로운 운하를 따라 베두인족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베두인족이 전 지역을 돌아 다니는 무국적 유목민이라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팔레스타인의 베두인족 대부분은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은 농업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베두인들은 스스로를 '베두인'이라기보다는 '네게브 아랍인'이라고 부르며, '베두인' 정체성은 유목민 생활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베두인족은 계속해서 유목민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오늘날 그들 대부분은 한 곳에 정착하는 삶을 살고 있으며, 거의 절반 이상이 도시 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베두인족은 양과 염소를 계속 기르고 있습니다. 2000년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네게브 베두인족은 양 20만 마리와 염소 5,000마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베두인족 전체가 양 23만 마리와 염소 2만 마리를 소유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오스만 통치 시절 정부는 법과 질서를 확립하고, 효과적인 국가 통제를 하는데 베두인족이 상당한 위협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1858년 오스만 제국은 베두인족의 이주를 위해 새로운 토지법을 발표하였습니다. 오스만은 제국의 과세 기반을 높이기 위해 전례없는 토지등록제를 실시하였습니다. 1858년 오스만 토지법에 따르면 사유지로 등록되지 않은 토지는 국유지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두인들은 자신이 살았던 토지를 정부에 등록하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토지를 등록하면 추가적인 세금을 내야 하고,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오스만 정부의 집행능력 부족, 베두인족의 문맹, 세금 납부 거부 및 베두인족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토지관련 개혁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후 탄지마트 개혁으로 오스만 제국은 점차 세력을 잃기 시작하였습니다. 19세기 말 술탄 압둘 하미드 2세는 베두인족을 통제하기 위해 다른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는 유목민이 주로 거주하는 발칸과 코카서스 지역에 정부의 정책을 집행할 무슬림 사람들을 위한 정착촌을 만들었습니다. 이 정착촌들은 정부의 통제를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또한 술탄은 부재 지주들에게 국유 토지를 사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부재 지주들은 많은 세작농들을 거느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사는 베두인족 대부분은 제국이 망할때까지 술탄의 지배를 벗어나서 그들만의 제도에 따라 농업에 종사하면서 유목민 생활을 지속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69년에 통과된 토지권리 합의조례를 통해 네게브 지역 대부분을 국유화 시켰습니다. 동시에 베두인족의 목축은 토지수용으로 많은 제한을 받았습니다. 1950년에 통과된 흑염소법은 국토의 침식을 막는다는 명목하에 염소의 방목을 금지하였습니다. 또한 베두인의 영토 소유권이 거의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방목은 불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통치하기 전에 오스만과 영국의 토지등록 절차는 네게브 지역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베두인족은 토지등록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토지 소유권에 대한 문서를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토지 소유권이 인정된 사람들조차도 염소를 제한된 범위에서 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염소를 방목하는 베두인족은 극히 드물었고, 대신 새로 생긴 일자리를 찾아 이주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스만의 오랜 통치기간을 거친 후 베두인족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베두인족은 1948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이후 주변 지역에 정착하여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68년과 1989년 사이에 베두인족을 위해 네게브 북동쪽에 별도의 원주민 타운을 건설했고, 원주민의 절반 이상이 이 곳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마을에 남아 있었고, 정부는 남은 원주민들을 점진적으로 강제 이주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계획에 반대하는 인권 단체에 따르면 정부는 남아있는 네게브의 베두인족을 차별하고, 그들의 토지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였습니다. 이 계획은 2013년 12월에 철회되었습니다. 현재 네게브의 베두인족 인구는 약 20만 명입니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정부가 건설한 베두인족 전용 마을 7개에 나누어 살고 있습니다. 남은 9만 명은 46개 마을에 살고 있으며, 그 중 35개 마을은 정부의 인정을 받았고, 11개는 2003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인정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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